슈즈 오브 더 피셔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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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슈즈 오브 더 피셔먼은 1968년 개봉한 영화로, 냉전 시대에 우크라이나 출신의 추기경 키릴 라코타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소련 강제 수용소에서 풀려난 키릴은 로마로 보내져 추기경이 되고, 교황 사망 후 콘클라베에서 예상치 못하게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중국과 소련 간의 갈등으로 인한 핵전쟁 위협 속에서 교회의 재산을 팔아 중국을 돕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국제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 영화는 종교와 정치의 관계, 개인의 신념과 역할을 탐구하며, 1960년대 냉전 시대의 국제 정세를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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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즈 오브 더 피셔먼 - [영화]에 관한 문서 | |
---|---|
영화 정보 | |
제목 | 영광의 좌 |
원제 | The Shoes of the Fisherman |
![]() | |
감독 | 마이클 앤더슨 |
각본 | 존 패트릭 제임스 케너웨이 |
원작 | 모리스 웨스트의 소설 "어부의 신발" |
제작 | 조지 잉글런드 |
주연 | 앤서니 퀸 오스카 베르너 데이비드 얀센 비토리오 데 시카 리오 맥컨 존 길구드 로렌스 올리비에 |
음악 | 알렉스 노스 |
촬영 | 어윈 힐리어 |
제작사 | 메트로-골드윈-메이어 |
배급사 | 메트로-골드윈-메이어 |
개봉일 | 1968년 11월 14일 (미국) |
상영 시간 | 162분 |
제작 국가 | 미국 |
언어 | 영어 |
제작비 | 670만 달러 |
2. 줄거리
냉전 시대, 우크라이나 리비우의 대주교였던 키릴 라코타는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 소련 수상 카메네프의 명령으로 석방된다. 당시 중국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펑 주석은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려 했다. 이에 소련과 미국은 전시 체제를 구축하며 제3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의 상황이었다. 카메네프는 이러한 위기를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을 이용해 해결하고자 키릴을 석방한 것이었다.[4]
키릴은 로마로 이송되어 추기경으로 임명되었으나, 교황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교황 선출 회의에 참여하게 된다. 7차 투표까지 교착 상태가 이어지자, 키릴은 타협 후보로 급부상하여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교황 키릴이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즉위 후, 교황 키릴은 시종 젤라시오의 도움을 받아 평범한 사제 복장으로 바티칸을 벗어나 로마 시내를 둘러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로마에 거주하는 텔레비전 저널리스트 조지 파버와 그의 아내 루스 파버 박사를 만나 인연을 맺는다.
한편, 세계는 중국-소련 분쟁과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제재로 인한 기근으로 핵전쟁 위기에 놓여 있었다. 교황 키릴은 국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소련으로 가서 카메네프와 중국 공산당 주석 펑을 만난다. 교황은 중국의 기근 문제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교황 키릴은 교황 대관식에서 교황관을 벗고, 중국을 돕기 위해 교회의 재산을 팔겠다고 선언하여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러한 교황의 결단은 국제 사회에 평화를 위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며 널리 칭송받는다.
2. 1. 키릴 라코타의 석방과 로마행
냉전 시대, 우크라이나 리비우 출신의 키릴 파블로비치 라코타 대주교는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 석방된다.[1] 이는 그의 전 교도관이자, 당시 소련 수상이었던 표트르 일리치 카메네프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1]카메네프가 키릴을 석방한 데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4] 당시 중국은 심각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펑 주석은 곡창 지대인 주변국 미얀마, 태국, 베트남 등을 침략하려 했다.[4] 이에 소련과 미국은 전시 체제를 갖추며 제3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4] 카메네프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8억 명의 신자를 둔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을 이용하고자 했고, 그 적임자로 키릴을 선택한 것이다.[4]
키릴은 로마로 이송되어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고, 성 아타나시오 성당을 칭호 교회로 받는다.[1]
2. 2. 교황 선출
키릴 파블로비치 라코타 대주교는 교황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추기경으로서 콘클라베에 참여한다.[1] ''파파빌리''(교황 후보)로 추기경 레오네와 추기경 리날디가 거론되었으나, 7차 투표까지 교착 상태가 이어진다.[1]이후, 라코타 추기경과 대화를 나누고 그의 겸손함에 감명을 받은 많은 추기경들이 그를 타협 후보로 지지했고, 시스티나 성당에서 콘클라베의 함성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추기경 리날디가 제안)[1]
라코타는 주저했지만, 결국 교황 선출을 수락하고 교황 키릴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1]
2. 3. 교황 키릴의 고뇌와 노력
냉전 시대, 우크라이나 리비우의 대주교였던 키릴 파블로비치 라코타는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 석방된다. 그는 소련 수상 표트르 일리치 카메네프의 명령으로 석방되었는데, 카메네프는 과거 키릴의 교도관이었다. 이후 키릴은 로마로 보내져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된다.교황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교황 선출 회의가 열리고 키릴 추기경도 선거인단으로 참여한다. 추기경 레오네와 추기경 리날디가 유력한 후보(파파빌리)로 거론되었으나, 7차 투표까지 결론이 나지 않자, 키릴 추기경이 타협 후보로 급부상하여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교황 키릴이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한편, 세계는 중국-소련 분쟁과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제재로 인한 기근으로 핵전쟁 위기에 놓여 있었다. 교황 키릴은 즉위 후, 시종 젤라시오의 도움을 받아 평범한 사제 복장으로 바티칸을 벗어나 로마 시내를 둘러보기도 한다.
교황 키릴은 논란의 중심에 있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테르몽 신부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와 유사)와 깊은 우정을 나누지만, 공식적으로는 성성성을 통해 테르몽 신부의 이단적 견해를 비판해야 했다. 테르몽 신부는 교황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 질환으로 사망한다.
이후 교황 키릴은 국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소련으로 가서 카메네프와 중국 공산당 주석 펑을 만난다. 교황은 중국의 기근 문제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교황 키릴은 교황 대관식에서 교황관을 벗고, 중국을 돕기 위해 교회의 재산을 팔겠다고 선언하여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러한 교황의 결단은 국제 사회에 평화를 위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며 널리 칭송받는다.
소련에서 정치범으로 20년이나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던 전 리비우 대주교 키릴은 소련 수상 카메네프의 명령으로 석방된다. 당시 중국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펭 주석은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려 했다. 이에 소련과 미국은 전시 체제를 구축하며 제3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의 상황이었다. 카메네프는 이러한 위기를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을 이용해 해결하고자 키릴을 석방한 것이었다.[1]
키릴이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교황이 서거하고, 리날디 추기경은 키릴의 겸손함과 용기에 감명받아 그를 차기 교황 후보로 추천한다. 결국 키릴은 새 교황으로 선출된다.[1] 키릴은 카메네프와 함께 중국으로 향하여 펭과의 회담에 임한다.[1]
2. 4. 테르몽 신부와의 관계
영화의 주요 부차적 줄거리는 논란이 된 신학자이자 철학자, 과학자인 테르몽 신부(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와 유사)와 교황 키릴의 관계이다. 교황은 테르몽 신부의 개인적인 친구가 되지만, 성성성이 그의 이단적인 견해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허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친구로 남았고 테르몽 신부는 교황의 가장 신뢰받는 고문이 되었다. 교황의 깊은 슬픔 속에, 테르몽 신부는 교황에게 절실히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 직후 신경 질환으로 사망한다.[1]2. 5. 중국과의 갈등 해결 노력
中華人民共和國|중화인민공화국중국어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펑 주석은 곡창 지대인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려 했다. 이에 소련과 미국은 전시 체제를 갖추었고,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소련의 카메네프 수상은 8억 명의 신자를 가진 로마 교황청의 힘을 빌려 이 위기를 해결하고자 했다.[1]새 교황이 된 키릴은 카메네프와 함께 중국으로 가서 펑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1] 교황 키릴은 중국의 문제가 계속되면 전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교황 대관식에서 교황관을 벗고, 교회의 재산을 팔아 중국을 돕겠다고 선언했다.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들은 이 선언에 크게 기뻐했다. 이러한 교황의 혁신적인 행동은 전 세계에 평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고, 그의 결정은 국제적으로 칭송받았다.[1]
3. 등장인물
출연진 | 배역 |
---|---|
안소니 퀸 | 추기경 키릴 파블로비치 라코타, 이후 교황 키릴 |
로렌스 올리비에 | 표트르 일리치 카메네프 |
오스카 베르너 | 데이비드 텔레몬드 신부 |
데이비드 잰슨 | 조지 파버 |
비토리오 데 시카 | 리날디 추기경 |
레오 맥켄 | 레오네 추기경 |
존 길구드 | 원로 교황 |
바바라 제포드 | 루스 파버 박사 |
로즈메리 덱스터 | 키아라 |
프랭크 핀레이 | 이고르 부닌 |
버트 쿼크 | 펑 주석 |
아르놀도 포아 | 젤라시오 |
폴 로저스 | 아우구스티누스회 성직자 |
조지 프라브다 | 고르셰닌 |
클라이브 레빌 | 부코비치 |
닐 맥기니스 | 카푸친회 수도사 |
마르네 메이틀랜드 | 라하마니 추기경 |
이사 미란다 | 마르케사 |
제럴드 하퍼 | 브라이언 |
레오폴도 트리에스테 | 죽어가는 남자의 친구 |
피터 코플리 | 영국 추기경 |
아서 하워드 | 영국 추기경 |
장 루주 | 도미니코회원 |
존 프레더릭 | |
아케 린드만 |
3. 1. 주요 인물
- '''안소니 퀸''' - 키릴 파블로비치 라코타 추기경. 이후 교황 키릴 역
- '''로렌스 올리비에''' - 표트르 일리치 카메네프 역
- '''오스카 베르너''' - 데이비드 텔레몬드 신부 역
- '''데이비드 얀센''' - 조지 파버 역
- '''비토리오 데 시카''' - 리날디 추기경 역
- '''레오 맥켄''' - 레오네 추기경 역
- '''존 길구드''' - 원로 교황 역
- '''바바라 제포드''' - 루스 파버 박사 역
- '''로즈메리 덱스터''' - 키아라 역
- '''프랭크 핀레이''' - 이고르 부닌 역
- '''버트 쿼크''' - 펑 주석 역
- '''아르놀도 포아''' - 젤라시오 역
- '''폴 로저스''' - 아우구스티누스회 성직자 역
- '''조지 프라브다''' - 고르셰닌 역
- '''클라이브 레빌''' - 부코비치 역
- '''닐 맥기니스''' - 카푸친회 수도사 역
- '''마르네 메이틀랜드''' - 라하마니 추기경 역
- '''이사 미란다''' - 마르케사 역
- '''제럴드 하퍼''' - 브라이언 역
- '''레오폴도 트리에스테''' - 죽어가는 남자의 친구 역
- '''피터 코플리''' - 영국 추기경 역
- '''아서 하워드''' - 영국 추기경 역
- 장 루주 - 도미니코회원 역
3. 2. 조연
- 오스카 베르너 - 데이비드 텔레몬드 신부 역[1]
- 데이비드 잰슨 - 조지 파버 역[1]
- 비토리오 데 시카 - 리날디 추기경 역[1]
- 레오 맥켄 - 레오네 추기경 역[1]
- 존 길구드 - 원로 교황 역[1]
- 바바라 제포드 - 루스 파버 박사 역[1]
- 로즈메리 덱스터 - 키아라 역[1]
- 프랭크 핀레이 - 이고르 부닌 역[1]
- 버트 쿼크 - 펑 주석 역[1]
- 아르놀도 포아 - 젤라시오 역[1]
- 폴 로저스 - 아우구스티누스회 성직자 역[1]
- 조지 프라브다 - 고르셰닌 역[1]
- 클라이브 레빌 - 부코비치 역[1]
- 닐 맥기니스 - 카푸친회 수도사 역[1]
- 마르네 메이틀랜드 - 라하마니 추기경 역[1]
- 이사 미란다 - ''마르케사'' 역[1]
- 제럴드 하퍼 - 브라이언 역[1]
- 레오폴도 트리에스테 - 죽어가는 남자의 친구 역[1]
- 피터 코플리 - 영국 추기경 역[1]
- 아서 하워드 - 영국 추기경 역[1]
- [https://fr.wikipedia.org/wiki/Jean_Rougeul 장 루주] - 도미니코회원 역[1]
- 존 프레더릭[1]
- 아케 린드만[1]
4. 제작 과정
메트로-골드윈-메이어는 1964년에 영화 판권을 구매했고, 조지 잉글런드가 제작을 맡아 모리스 웨스트와 함께 각본을 썼다.[2] 잉글런드는 바티칸에 기술 자문을 구했지만, 시스티나 성당 등은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해 세트를 제작해야 했다.[5] 앤서니 퀸이 주연 배우로 일찍 발표되었으나, 감독은 앤서니 애스퀴스에서 마이클 앤더슨으로 교체되었다.[4] 영화 속 교황관은 교황 바오로 6세의 것을 본떠 제작되었다.
4. 1. 각본 및 원작과의 차이점
메트로-골드윈-메이어는 1964년에 영화 판권을 구매했고, 제작은 조지 잉글런드에게 배정되었으며 그는 모리스 웨스트와 함께 각본을 썼다.[2]앤서니 퀸은 비교적 일찍 영화의 주연 배우로 발표되었다. 원래 감독은 영국 감독 앤서니 애스퀴스였지만, 1967년 11월에 병에 걸려 마이클 앤더슨으로 교체되었다.[4]
잉글런드는 바티칸으로부터 기술적인 조언을 구했지만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해 시스티나 성당과 같은 장소는 재현해야 했다.[5]
영화의 대관식 장면에 사용된 교황관은 교황 바오로 6세의 교황관을 모델로 제작되었다.
영화의 결말은 책과 다르게 변경되었다. 모리스 웨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구조적으로 말해서 나는 항상 ''어부의 구두''가 내 약한 책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너무 많이 벗어난다. 영화의 대본은 더 촘촘하고 직접적이며, 소설에서 말하고 싶었던 부분의 내용을 더 강력하게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마르크스주의자이든 자본주의자이든,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사람들이 선택을 해야 하는 역사적 지점에 도달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을 실천하거나 서로에게 증오를 실천해야 한다. 각 측의 사람들은 "봐, 우리는 모두 형제야. 왜 거리에서 서로를 죽이는가? 핵폭탄을 떨어뜨리지 말자. 한 시간만 더 이야기하자"라고 말해야 한다. 오늘날 이것은 선이 악에 대한 진정한 승리이다. 이것이 내가 영화의 마지막 연설에 넣으려고 노력한 것이다.[6]
모리스 웨스트는 텔레몬이 종교 재판을 받는 장면을 쓰는 데 몇 달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그 장면이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지만, "감독의 동의를 얻어 배우들이 변경한 것을 발견하고 소란을 피운 후에야 가능했다. 나는 그것이 스튜디오와 나 사이의 계약 의무를 위반하여 플롯의 신학적 타당성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웨스트는 "결국 영화의 변형이 누적되어 각본에서 내 이름을 뺐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그는 할리우드가 "스크린에 쉽게 적용할 수 없는 모든 것의 근본적인 철학과 신학을 왜곡하는 경향" 때문에 "스릴러나 매우 단순한 이야기 외에는 영화에 다시 팔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7]
5. 평가
이 영화는 1969년 호주 박스 오피스에서 6번째로 인기 있는 영화였지만,[8] 주목할 만한 흥행 실패작이었다.[9] 이 영화의 증가하는 제작비는 당시 ''아이스 스테이션 제브라''와 함께 로버트 오브라이언 MGM 사장의 회장직 이관으로 이어졌지만, 그는 두 영화가 개봉되어 비용을 회수하는 데 실패한 후 1969년 초에 이 직책에서 사임했다. 알렉스 노스는 최우수 작곡상 후보에, 조지 데이비스와 에드워드 카파그노는 최우수 미술상 후보에 올랐다.[10] ''어부의 신발''은 7개의 리뷰를 바탕으로 로튼 토마토에서 43%의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11]
5. 1. 수상 내역
- 제26회 골든 글로브상 작곡상 (알렉스 노스)[14]
- 제40회 전미 비평가 위원회상 작품상
- 제40회 전미 비평가 위원회상 남우조연상 (레오 맥켄)[15]
-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곡상 후보 (알렉스 노스)
- 아카데미상 최우수 미술상 후보 (조지 데이비스, 에드워드 카파그노)[10]
6. 주제 및 분석
영화는 냉전, 종교와 정치, 개인의 신념과 역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특히 냉전 시대 국제 정세와 종교, 정치의 복잡한 관계를 배경으로, 개인의 신념이 세계 평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출신 키릴 대주교는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 석방되어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중국-소련 분쟁과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제한으로 인한 핵전쟁 위기 속에서, 교회의 재산을 팔아 중국을 돕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이는 종교 지도자가 국제 정치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개인의 신념과 용기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1]
6. 1. 냉전 시대의 국제 정세
냉전 시대, 중국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 주석 펑은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이웃 버마, 태국, 베트남 등을 침략하려 했다. 이에 소련과 미국은 전시 체제를 갖추었고, 자칫하면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이러한 상황에서 소련 수상 카메네프는 8억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교황청을 이용하여 위기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20년간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던 우크라이나 출신 키릴 대주교를 석방하여 교황으로 선출되도록 돕는다.
6. 2. 종교와 정치의 관계
냉전 시대, 우크라이나 리비우 출신의 키릴 파블로비치 라코타 대주교는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 석방되어 로마로 보내진다. 그는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지만, 교황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교황 선출 회의에 참여하게 된다.[1]7차 투표까지 교착 상태가 이어지던 중, 라코타 추기경은 그의 겸손함에 감명을 받은 추기경단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교황 키릴이라는 이름을 선택한다.[1]
한편, 중국-소련 분쟁과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제한으로 인해 세계는 핵전쟁 위기에 놓인다. 교황 키릴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교황관을 벗고 교회의 재산을 팔아 중국을 돕겠다고 선언한다.[1]
이러한 교황의 결정은 국제적인 찬사를 받으며, 세계 평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한다. 영화는 종교 지도자인 교황이 국제 정치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 소련에서 정치범으로 20년간 강제 노동 수용소에 있었던 키릴은 소련 수상 카메네프의 명령으로 석방되는데, 이는 기근에 시달리는 중국의 팽 수석이 주변국을 침략하려 하고, 이에 소련과 미국이 전시 체제를 구축하여 제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위기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2] 카메네프는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위기를 해결하려 했으나, 키릴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 교황이 사망한다. 키릴은 새 교황으로 선출되고, 카메네프와 함께 중국으로 가 팽 수석과 회담을 가진다.[2]
6. 3. 개인의 신념과 역할
냉전 시대, 우크라이나 리비우의 대주교였던 키릴 라코타는 시베리아 노동 수용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 석방되어 로마로 보내진다. 그는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지만, "단순한 사람들을 위한 단순한 임무"를 원했다.[1]교황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교황 선출 회의가 열리고 키릴 추기경은 교황 후보로 거론된다. 7차 투표까지 교착 상태가 이어지자, 그는 많은 추기경단의 지지를 받아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교황 키릴이라는 이름을 선택한다.[1]
한편, 중국 공산당과 소련의 갈등, 그리고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제재로 인한 기근으로 세계는 핵전쟁 위기에 놓인다. 교황 키릴은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1]
어느 날 저녁, 교황 키릴은 평범한 사제 복장으로 바티칸을 벗어나 로마 시내를 탐험한다. 그는 우연히 만난 텔레비전 저널리스트 조지 파버와 그의 아내 루스 파버 박사를 돕게 된다. 또한, 유대인 환자의 임종을 돕고, 유대인 기도를 함께 바치며 종교 간의 화합을 보여준다.[1]
교황 키릴은 논란이 많은 신학자 테르몽 신부와 깊은 우정을 나누지만, 공식적으로는 그의 이단적 견해를 비판해야 했다. 테르몽 신부는 교황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지만, 안타깝게도 병으로 사망한다.[1]
교황 키릴은 세계 평화를 위해 중국 공산당 주석 펑과 소련 수상 카메네프를 만나 회담을 가진다. 그는 중국의 기근 문제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교황 대관식에서 교황은 교황관을 벗고 교회의 재산을 팔아 중국을 돕겠다고 선언하여 전 세계에 큰 감동을 준다. 이 혁신적인 행동은 세계 평화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며 국제적인 찬사를 받는다.[1]
참조
[1]
뉴스
Metro-Goldwyn Omits Dividend; O' Brien Resigns: Board Cites Possible Loss Of Up to $19 Million in The Current Fiscal Year Bronfman Named Chairman
1969-05-27
[2]
뉴스
M‐G‐M Buys Novel by West
https://www.nytimes.[...]
1964-06-16
[3]
뉴스
Broadway's mania: Set films to music.
1964-09-1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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